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사각지대, 도서·산간지역에 대한 정책적 주목이 필요한 이유
대한민국은 전기차 보급에 있어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전환을 이끌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이 같은 전환의 이면에는 뚜렷한 인프라 불균형이 존재한다. 바로 ‘도서·산간지역’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도시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충전소가 밀집되어 있는 반면, 인구 밀도가 낮고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은 여전히 충전 인프라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탄소중립 이행과 연계된 교통 부문의 구조 개편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비전은 전국민의 충전 접근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도서·산간지역은 차량 이동 거리나 생활 반경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충전소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전기차 전환에 따른 교통 편의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지역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낮다는 이유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이는 ‘수요가 없으니 공급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비화되며, 결과적으로 충전소 설치 없이 전기차 이용률이 늘지 않고, 이용률이 낮아 또 다시 설치가 지연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강조하는 ‘균형발전’이나 ‘교통 복지’는 이처럼 기본적인 인프라 접근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전기차는 충전이 불가능하면 단순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운행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연료를 충전하는 것과는 다르게, 충전 시간도 길고, 거점 간 간격이 좁아야 하기 때문에 단 한 곳의 충전소 부재가 지역 전체의 전기차 운행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도서·산간지역의 충전소 구축은 단순한 인프라 투자가 아닌, 국민 생활권 내 기본 서비스 접근성 확보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불균형 현실, 도서·산간지역의 구체적 현황 분석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 분포는 여전히 도시 중심에 치우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년 상반기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전기차 충전기(공공+민간)는 총 22만 기에 달하지만, 이 중 약 70%가 수도권과 6대 광역시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도서·산간지역에 해당하는 전남 고흥, 강원 평창, 경북 영양, 충북 제천 등에서는 군 단위 지역 전체에 급속충전기가 2~3기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충전기는 공공기관 주차장, 군청 인근, 또는 관광지 주변에 제한적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실제 이용자 접근성과는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완도군은 전기차 등록 대수가 2024년 현재 380대 정도이지만, 충전소는 단 4곳에 불과하다. 이 중 2곳은 군청 인근에 몰려 있어 동부 해안권 주민은 차량을 타고 40분 이상 이동해야 충전이 가능한 상황이다. 강원도 인제군은 면적은 넓지만 충전소는 대부분 국도변 휴게소에 설치되어 있고, 지역 내 거주 주민이 주거지 근처에서 충전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도서지역 특성상 전력망이 약한 경우가 많아 급속충전기 설치가 어렵다. 제주도와는 달리 독립적인 전력망을 사용하는 작은 섬 지역은 50kW 이상 급속충전기 도입에 기술적 어려움이 따른다. 이 경우 저속충전기 설치에 그치는데, 이 역시 관광지 중심으로 편중되면서 실제 지역 주민의 생활 충전 수요는 외면되는 상황이다.
관광객 수요의 계절성 또한 문제다. 여름철 피서객이 몰리는 시기에는 충전 대기시간이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하지만, 이를 감당할 추가 설비는 마련되지 않는다. 지역 행정에서는 인구 대비 수요 예측이 어렵다는 이유로 고정 충전소 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로 인해 장기적 수요 예측과 유연한 인프라 대응 모두가 미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충전 인프라 설치 주체의 모호함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공공 충전소의 경우 지자체, 한국전력공사, 환경부, 그리고 민간 충전사업자까지 다양한 주체가 중복 설치 혹은 협의 없이 각각 추진하고 있어, 지역 내 최적화된 충전망 설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공간 낭비, 중복 투자, 접근성 불균형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실제 도서·산간지역에서는 이런 비효율이 더욱 두드러진다.
전기차 충전 정책의 실효성 한계, 지자체 중심 공급 체계의 구조적 문제점
정부는 충전소 설치 확대를 위해 ‘지자체 공모형 사업’을 매년 운영 중이지만,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도서·산간지역은 이러한 공모 사업의 수혜 대상이 되기 어렵다. 충전기 설치 기준이 ‘전기차 보급률’ 또는 ‘기기 활용률’을 중심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률이 낮은 지역은 충전기 설치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사업 선정 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전북 진안군의 경우, 2023년 환경부 충전 인프라 공모에서 최종 탈락한 이유가 ‘지역 내 수요 미비’였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은 수요 부재가 아닌 인프라 미비로 인해 전기차 보급이 더뎌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였다.
지자체 역시 충전소 설치에 적극적이지 않다. 설치비용 대비 실질적 이용률이 낮을 것을 우려하고, 유지보수와 민원 발생 등의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군 단위 자치단체는 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충전기 유지보수를 전담할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집행까지 모든 과정이 소극적으로 진행된다.
민간사업자 역시 도서·산간지역에 진입할 유인이 부족하다. 수도권이나 도시 중심지와는 달리, 설치 후 ROI(투자 대비 수익률)를 기대하기 어렵고, 충전기 고장 시 A/S 인력 파견에도 높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충전소는 장기 고장 상태로 방치되며, 이는 전기차 이용자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또한 전기차 구매 촉진과 충전소 이용률 제고를 위한 수요창출 정책은 전무한 상태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공급한다고 해서 전기차 생태계가 구축되지는 않는다. 충전소 운영 수익 모델, 지역민 대상 전기차 공유 사업, 지역 주도형 전기차 커뮤니티 구축 등이 병행되어야만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행 정책은 공급자 중심, 단기 실적 중심으로 기획되어 있다. 도서·산간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전국 단일 기준’을 일괄 적용하는 방식은 결국 지역 간 격차를 더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미래 방향, 지속 가능하고 자립 가능한 지역 모델 제시
이제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단순히 ‘몇 개를 설치했는가’의 양적 성과가 아닌, 어디에 어떻게 설치했는가의 질적 방향성이 중요하다. 도서·산간지역의 지속 가능한 인프라 모델은 기존과 다른 구조를 가져야 한다.
우선 ‘지역 맞춤형 분산형 충전소 모델’이 필요하다. 이는 대규모 고속 충전소보다는 마을단위 소규모 충전기를 다양한 거점에 분산 설치하는 방식이다. 마을회관, 복지센터, 우체국 등 기존의 공공시설을 충전기 설치 장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접근성과 지역 주민 수용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에너지 자립형 충전소’ 도입이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계한 오프그리드 방식은 전력망이 취약한 도서지역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제주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이러한 충전소가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유지비 절감과 정전 대비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리스크 분담형 인센티브 체계’도 중요하다. 충전소 운영에 따른 손실 위험을 정부와 민간이 일정 비율로 공유하고, 충전 요금 정산 구조에 변동 요인을 반영해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사업자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도서·산간지역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전기차 공유 플랫폼’이나 ‘지역 협동조합 충전소 운영’ 모델도 실현 가능하다. 군 단위 자치단체가 주도해 차량을 공동 소유하고, 충전소를 지역 인프라로 공동 관리한다면 충전소의 사회적 의미와 지속성이 강화된다. 특히 청년 귀농인, 지역 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충전소 운영 일자리 창출 정책과 연계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정책의 방향성 또한 중앙-지방 간 역할 분담이 명확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표준화된 기술 개발과 예산 지원을 전담하고, 지자체는 실행계획 수립 및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 실정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정기적인 실적 점검과 성과 기반 인센티브 지급 체계도 병행되어야 하며, 실질적인 지역별 충전 격차 해소가 정책 목표로 명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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