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속, 소외되는 ‘남해안 소도시’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확장은 단순한 도시 인프라의 일부가 아닌,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초시설이다. 전기차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가 일상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장은 여전히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정부는 전기차 충전기를 2030년까지 120만기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설치의 밀도와 위치, 접근성 측면에서 ‘보편적 충전권’을 실현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남해안을 따라 위치한 소도시들은 이러한 전기차 인프라 확장의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경남과 전남의 남해안권에는 통영, 거제, 남해, 고흥, 완도, 해남, 장흥, 고성 등의 중소도시 및 군 단위 자치단체가 분포한다. 이들 지역은 관광, 수산, 농업을 기반으로 경제가 구성되어 있으며,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단독주택 위주의 주거 형태를 띠고 있다. 이로 인해 충전 인프라를 도입하고 확산시키는 데 구조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남해안 소도시에서는 충전 인프라 수요가 수도권처럼 일관된 패턴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관광객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급속 충전소의 수요가 급등하지만, 비수기에는 이용률이 급격히 하락한다. 또한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에서는 전기차 보급률 자체는 낮지만, 이용자 1인당 충전 수요가 높은 경향도 나타난다. 이러한 복합적 수요 패턴은 기존의 ‘도시 중심 설계’ 방식으로는 충전소 위치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전기차 보급이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는 현시점에서, 남해안 소도시가 겪고 있는 접근성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정책적 균형의 문제이자, 친환경 정책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충전소 접근성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모두가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전기차 충전소는 있지만 접근이 어려운 남해안의 구조적 문제
남해안 소도시에서 전기차 충전소의 접근성이 낮은 이유는 단순히 충전기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숫자만으로는 체감 불편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 이 지역의 전기차 이용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충전소가 있더라도 나와는 먼 곳에 있거나,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즉, 문제의 본질은 충전소의 물리적 분포와 실질적인 사용 가능성 사이의 괴리다.
예를 들어 통영시의 경우, 총 충전기 수는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된 편이지만, 설치 위치가 대부분 시청, 도서관, 문화회관, 주요 관광지 주차장 등 공공시설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일반 주택가, 읍면 단위 마을, 도심 외곽의 상업지역에는 충전소가 거의 없다. 이처럼 특정 용도 공간에만 집중된 충전소 분포는 일상적인 사용성을 떨어뜨리고, “매일 쓸 수 없는 충전기”라는 비판을 낳는다.
또한 거제시는 산업도시로 조선업 종사자 중심의 전기차 이용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충전소의 대다수가 조선소 인근에 편중되어 있어 지역 간 균형이 맞지 않는다. 여수시 역시 충전소의 수는 많지만 대부분 완속 충전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급속 충전소는 관광지 중심으로만 설치되어 있어 실제 지역민의 일상 이용에는 한계가 있다. 급속 충전기를 찾기 위해 도심 외곽까지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마저도 고장이나 예약 중복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남해군, 고흥군, 해남군 등 군 단위 지역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읍사무소나 군청 앞에 설치된 충전소 외에는 실질적으로 이용 가능한 충전소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는 종종 20km 이상 떨어진 충전소로 이동해야 하며, 충전 중 대기 차량으로 인해 몇 시간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농촌과 어촌 지역에서는 주차공간이 협소하고, 전력 인입이 어려워 충전소 자체 설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곳도 많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사용자가 전기차를 선택하는 데 있어 ‘불신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충전이 어렵다”, “충전소가 있어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경험이 반복되면, 전기차에 대한 신뢰와 선호도는 급속히 낮아진다. 결국, 충전소가 있음에도 사용되지 못하는 비효율, 또는 ‘보여주기식’ 설치는 전기차 확산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생활권 중심 접근성 향상을 위한 지역별 실제 사례 분석
충전소 접근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충전소 숫자 늘리기’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방식이 요구된다. 특히 남해안 소도시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며, 다행히 일부 지자체에서는 효과적인 정책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사례는 향후 전국적인 모델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거제시는 민간 아파트 단지와 협약을 통해 생활권 중심의 충전기 설치를 진행했다. 기존에는 충전소가 공공기관과 산업단지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2023년부터 ‘단지당 1기 이상 완속 충전기 확보’라는 목표를 세우고, 충전사업자와 입주민 간의 협의를 행정이 중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과정에서 충전기 설치 공간 제공, 전기 인입 공사비 일부 보조, 스마트 앱 연동 안내문 제작 등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충전소의 생활권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남해군은 농촌 지역의 구조를 고려해 마을 단위의 공공시설을 충전소로 전환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주민센터, 보건소, 마을회관, 농협 지점 등은 주민의 왕래가 잦고 주차 공간이 일정 수준 확보되어 있어 충전기 설치에 적합하다. 특히 인프라가 취약한 해안 마을에는 태양광 패널과 연계한 에너지 자립형 충전소를 설치해 전력망 의존도를 줄였다. 이 모델은 초기에는 시범사업으로 출발했지만, 사용자 만족도가 높아 예산 확보 후 정식 운영으로 전환되었다.
고흥군에서는 전기차 충전을 위해 이동이 어려운 고령 운전자를 위해 ‘방문형 충전 서비스’를 시범 도입했다. 신청자가 미리 예약하면 충전 차량이 직접 거주지로 방문해 충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비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해당 서비스는 사회복지와 교통복지를 융합한 정책으로 평가받으며, 도 단위에서의 확대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여수시는 상업지구 내 공유주차장과 연계하여 민간 충전사업자의 입지를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부지 제공, 광고판 설치 허용, 임대료 감면 등 유인책을 제공했고, 사업자는 주요 번화가 내 상가주차장에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며 상권 중심의 충전소 확산을 이끌어냈다. 이 모델은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어떻게 지역 중심의 충전 인프라 확장을 가능케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역의 생활 패턴, 지리적 제약, 행정 자원 한계를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충전소 접근성 향상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단순한 기계 설치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행동 패턴과 공간 이용 방식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협업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충전 인프라 확장의 길이다.
충전 인프라의 다음 단계, 남해안 맞춤형 정책 설계가 답이다
남해안 소도시에서 전기차 충전소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인프라 확장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특화 맞춤형 정책 설계와 실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권 단위의 수요 기반 설치 전략이다. 단순히 인구수나 면적에 따른 정량 기준이 아니라, 실제 주민들의 이동 동선, 차량 보유 형태, 주차 인프라 상태, 전기 인입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세밀한 수요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 비율이 높은 마을은 개인 충전기 설치가 어려운 만큼 공공시설 기반 공동 충전소 설치가 우선되어야 하고, 농업 활동 중심 지역은 차량 이동이 집중되는 시간대를 기준으로 충전소 배치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동형·공유형 충전 인프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충전 수요가 없는 지역에는 전봇대 충전기, 태양광 기반 소형 충전소, 예약형 이동 충전 차량 같은 유연한 기술적 대안이 더 적합하다. 이러한 형태는 초기 설치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유지보수도 단순화할 수 있어 행정 부담이 적다.
민간사업자 유치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보완되어야 한다. 대도시와 동일한 보조금 체계로는 지방 진출을 유도하기 어렵다. 수익이 낮은 지역에는 차등화된 인센티브를 통해 충전사업자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지자체 공유 부지 무상 제공, 광고 공간 활용 허용, 전기요금 일부 감면, 지방세 감면 등의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충전소 정보 통합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지금은 운영사마다 다른 앱을 통해 충전소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현장 고장, 대기 시간, 예약 현황 등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고령층과 외부 관광객이 많은 남해안 소도시에서는 단일 앱으로 통합된 실시간 정보 제공이 충전소 접근성과 신뢰도에 핵심적이다.
전기차 충전소는 단순한 기술 설비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 사회의 교통권, 환경권, 에너지권을 실현하는 기초 인프라다. 남해안 소도시가 겪는 충전소 접근성 문제는 앞으로 대한민국 전기차 정책이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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