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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

전기차 충전소 설치, 지자체 조례의 역할과 입법 공백의 구조적 한계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이제 도시계획, 에너지 정책, 교통정책을 통합하는 핵심 기반 시설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전기차 보급 확대를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충전소 설치는 국가와 지역의 공동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충전소 설치가 단순히 ‘장비를 설치하는 일’로 끝나지 않듯, 법적 근거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도 없다. 특히 지역 여건에 맞는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수단은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이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서 지차체 조례의 역할

지자체 조례는 지역 내 전기차 충전소 설치와 운영에 있어 입지, 규모, 절차, 인센티브, 관리책임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법적 도구다. 하지만 전국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아직 관련 조례가 미비하거나, 단순한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 입법 공백 상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충전 인프라 설치 속도를 늦추고, 사업자와 주민 간의 갈등을 유발하며, 민간 투자 유인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본 글에서는 전기차 충전소 설치와 관련된 지자체 조례의 역할과 기능을 먼저 살펴보고, 현재 각 지자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입법 공백의 현실을 분석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대안을 심층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단순한 충전소 설치 확대가 아닌,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 전기차 충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적 기반이 무엇인지 조명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서 지자체 조례가 갖는 법적 기능과 실무적 중요성

전기차 충전소 설치와 관련된 주요 법령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차법), 「전기사업법」, 「도로교통법」 등이다.
그러나 이들 법은 대부분 국가 차원의 방향성과 기본 원칙을 명시하고 있을 뿐, 지역별 설치 기준이나 설치 허용 구역, 인허가 절차, 민간 사업자 유치 방안, 주민 협의 절차 등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 조례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1. 설치 기준의 구체화
    조례는 건물 용도별, 지역별(주거/상업/공공용지 등)로 충전소 설치 기준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조례는 아파트 단지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 시, 전체 주차면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확보하도록 정하고 있다.
  2. 민간 사업자 유치 조건 및 인센티브 명시
    조례를 통해 민간 충전사업자에게 부지 임대료 감면, 건축 인허가 간소화, 전력 인입 지원 등의 혜택을 규정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 내 투자 활성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3. 주민 의견 수렴 및 공공 갈등 조정 절차 마련
    충전소 설치 시 인근 주민과의 마찰이 예상되는 경우, 조례는 사전 주민 설명회, 의견서 제출 절차 등 행정적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담을 수 있다.
  4. 유지관리 주체 및 비용 분담 방식 설정
    조례를 통해 충전기 고장 시의 책임 주체, 유지보수 비용 분담 방식을 사전에 명확히 할 수 있다. 이는 충전기 방치 및 이용자 불만 문제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복합용도건물, 소규모 주차장, 공동주택, 도시계획 미반영 구역법령이 포괄하지 못하는 회색지대에서 조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지자체는 해당 지역의 인구 구조, 차량 등록대수, 주거 밀집도 등을 반영하여 가장 적절한 형태의 충전소 설치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례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민간사업자는 행정 불확실성 때문에 충전소 설치를 꺼리게 되고, 지자체 스스로도 주도적인 충전소 확충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조례 미비에 따른 입법 공백과 정책 실행력의 한계

2024년 기준으로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중 전기차 충전소 설치와 관련된 독립 조례를 보유한 지자체는 약 30% 내외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관련 조항이 조례 안의 한 문단 또는 부칙 수준에 포함되어 있으며, 실효적인 규정이나 집행력을 담보할 조항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실제 정책 실행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1) 법적 근거 미비로 인한 사업 지연

민간사업자가 지자체에 충전소 설치를 요청하더라도, 관련 조례가 없으면 행정 절차가 표준화되지 않아 내부 검토에 수개월이 소요된다. 인허가 과정도 불투명하며, 공공부지 활용이나 점용 허가를 받는 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2) 부지 확보 기준 미비

충전소를 설치하기 위해 공영주차장, 도로변 주차장, 공공기관 부지를 활용하려 할 때, 조례가 없다면 적법한 설치 기준이나 우선순위가 없어 혼선이 발생한다. 그 결과 같은 지역에서도 설치 장소에 따라 허가가 나기도 하고, 반려되기도 하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3) 주민 갈등 발생 시 중재 기준 부재

전기차 충전소는 일부 주민들에게는 ‘필요한 인프라’이지만, 다른 주민에게는 소음·전자파·주차공간 축소 등 불편 요소로 인식된다. 조례가 없을 경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행정적 기준이나 법적 판단 근거가 없기 때문에 설치 자체가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4) 중소 지자체의 행정 역량 부족 노출

조례가 없는 지자체는 충전소 설치 요청이 들어올 경우, 상급 기관(환경부, 산업부, 도청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거나, 자체적 판단을 유보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사업자와의 협의 지연, 설치 회피, 행정 리스크 회피 등의 악순환이 발생하며, 이는 충전소 확산 속도를 심각하게 저해한다.

 

이처럼 조례 미비는 정책의 현장 실행력을 떨어뜨리고, 민간 참여를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중앙정부의 보급 정책과 지역의 수용 구조 사이에 법적·제도적 단절이 발생해, 전기차 충전 생태계의 완성을 어렵게 만든다.

 

 

지역별 조례 제정 현황과 우수 사례 분석

전국적으로 전기차 충전소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일부 대도시와 정책 선도 지자체에 국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대전광역시, 전주시, 수원시, 성남시 등은 자체적으로 비교적 상세한 조례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은 충전 인프라 확충과 민간 사업자 참여 측면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 서울특별시 조례 (서울시 친환경차 보급 및 충전 인프라 조례)

서울시는 일정 규모 이상 아파트, 공공건물, 상업시설에 대해 주차면수 기준으로 충전기 설치를 유도하고 있으며, 민간사업자와의 협력 체계도 조례에 반영되어 있다. 또한 민원 대응 절차와 유지관리 기준도 조례에 포함돼 있다.

 

▷ 수원시 조례

수원시는 충전기 설치를 위한 ‘도시계획 사전 반영 의무’를 조례에 포함시켰다. 신축 건물에는 반드시 충전소 설치 계획을 포함해야 하며, 미이행 시 시에서 사용승인을 보류할 수 있다. 이는 사후 설계가 아닌 사전 설계로 인프라를 구축하는 좋은 사례다.

 

▷ 성남시 조례

성남시는 공동주택 내 충전기 설치 민원 해결을 위해,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없이 일정 수 이상의 전기차 등록이 확인될 경우 설치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이는 주민 간 갈등 해결을 위한 선제적 입법 노력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달리 다수의 기초지자체는 조례가 전혀 없거나, 행정문서 수준의 지침만 있는 상태다. 제주도 일부 군 단위 지역, 강원도 산간지역, 경북 농촌 지자체 등은 조례 없이 설치를 추진하다가 주민 반발로 중단되는 사례도 있다.
이는 정책의 제도화 없이 사업만 추진했을 때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제도적 대안: 표준 조례 제정과 중앙-지방 연계 체계의 필요성

지자체 조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모든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충전소 조례를 설계하고 제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은 아니다.이에 따라 국가 차원의 ‘표준 조례안’ 제공이 절실하며, 동시에 중앙-지방 간 협력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1) 환경부·산업부 주도의 ‘전국 통일 표준 조례안’ 개발

중앙정부는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되, 일정한 틀을 가진 표준 조례안을 마련해 전국 지자체에 제공할 수 있다. 이 표준안은 ▲충전소 설치 기준, ▲민간사업자 유치 조건, ▲주민 갈등 중재 절차, ▲유지보수 책임 규정, ▲인허가 간소화 방안 등을 포함해야 한다.

 

2) 광역지자체 주도의 조례 컨설팅 지원

기초지자체는 입법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광역지자체 또는 도 단위가 하위 시·군에 대한 조례 제정 컨설팅 및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행정역량의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조례 기반 민간 투자 활성화 정책 병행

조례가 단순히 의무 규정으로만 작용할 경우, 오히려 민간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조례와 함께 보조금, 세금 감면, 전력 인입 지원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조례가 투자 가이드라인이자 보증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4) 디지털 기반 통합 조례관리 시스템 구축

전국 지자체 조례 정보를 한곳에 모은 통합 데이터베이스와 시각화 플랫폼이 구축되면, 지자체 간 비교와 벤치마킹이 가능해지고, 주민들도 정책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를 통해 조례의 투명성과 활용도를 함께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산의 핵심은 단순한 설치가 아니라, 입법 기반을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하고 분산 가능한 운영 구조 확보에 있다. 지자체 조례는 그 출발점이며, 이제는 제도화를 통한 충전소 확산 전략의 정교화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