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이에 걸맞은 충전 인프라의 구축은 국가 정책의 핵심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탄소중립과 내연기관차 퇴출 로드맵에 따라 정부는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지방자치단체에 충전소 설치 예산을 내려보내고 있으며,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주요 부처가 관련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산이 ‘얼마나’ 내려가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바로 ‘무엇을 기준으로 예산을 나눌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형평성과 효율성의 충돌 문제다.
지자체별 예산 배분 기준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지역 인구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전기차 등록대수 기준이다. 인구수 기준은 행정적 평등성과 지역 간 균형을 강조하지만, 차량 수 기준은 수요 기반 효율성과 실사용 중심 배분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는 이 두 기준이 각각 다른 철학과 정책 효과를 가지며, 실제 현장에서는 이 기준 차이로 인해 지속적인 예산 낭비, 과잉 설치, 민원 발생, 민간 유입 저해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예산의 배분 구조를 분석하고, 인구 기준과 차량 수 기준이 실제 정책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떤 형평성 문제가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더불어, 형평성과 효율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적 대안과 정책 설계 방향도 함께 제시함으로써, 향후 지속 가능한 충전소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전기차 충전소 예산 배분의 기본 구조: 인구 기준과 차량 수 기준의 제도적 배경
전기차 충전소 구축에 필요한 예산은 대부분 중앙정부 예산으로 편성되고 있으며, 각 지자체로의 배분은 부처별 사업 특성과 정책 목표에 따라 기준이 상이하게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부는 ‘공공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을 통해 지자체별 예산을 인구수 기준으로 배분하며,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간 충전 인프라 설치 보조사업’을 통해 차량 수를 중심으로 수요 기반 예산을 배정한다.
이러한 방식이 혼재된 이유는 각 부처의 정책적 철학과 집행 현실에서 비롯된다.
- 환경부는 탄소중립과 교통복지 실현을 최우선 목표로 하며,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전기차 충전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인구수 기준을 적용하여 전국 모든 지역에 일정 수준의 예산이 자동 배정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산업부는 전기차 산업의 빠른 성장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수요가 있는 지역에 예산을 몰아 효율적으로 충전소를 설치하고, 사업 성과를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차량 등록대수 기준, 충전소 미설치 비율, 민간 수요 추정치 등을 반영한 차등 배분 방식을 적용한다.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은 각 부처의 사업계획을 사전 협의하지만, 예산 배분 기준에 대한 명확한 통합 지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지자체들은 각 사업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며, 어떤 기준이 우선인지 혼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A 지자체는 환경부 공모에서는 인구 기준으로 예산을 확보했지만, 산업부 사업에서는 차량 수가 적어 탈락했고, 같은 해 두 개 부처에서 전기차 충전소 관련 예산을 각각 전혀 다른 기준으로 배정받았다.
이러한 이중적 기준 구조는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지자체의 정책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구 기준 예산 배분의 장점과 구조적 한계
인구 기준은 표면적으로는 '공정하고 균등한' 예산 배분 방식을 보장한다. 모든 지역에 최소한의 충전소 인프라를 마련함으로써 교통 인권과 지역 균형 발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이나 도서지역은 전기차 보급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충전소 설치 자체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인구 기준은 ‘정책적 배려’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실제 정책 효과 측면에서는 다양한 문제점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1) 실효성 없는 과잉 설치 사례 다수
충청북도 단양군은 인구 3만 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인구 기준으로 충전소 설치 예산이 배정되어 공공시설 5곳에 완속 충전기를 설치했다. 하지만 1년간의 이용률 평균은 3.1%에 불과했으며, 일부 충전기는 설치 이후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예산 낭비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2) 민간 사업자 배제 및 기회비용 증가
수익성이 낮은 지역에 과도한 충전소가 설치되면, 민간 충전사업자는 해당 지역을 투자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게 된다. 반면 수요가 많지만 인구는 적은 신도시 지역, 산업단지 밀집 지역 등은 오히려 충전소 설치가 늦어지면서 민간 투자 유인도 저하되고, 사용자 불편은 가중된다.
3) 공간 활용의 비효율성과 주민 반발
소규모 지자체에서는 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는 공공 부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도서관, 복지관 등의 유일한 주차 공간을 충전소로 전환하게 되면 비사용 전용 구역으로 인한 민원이 증가하고, 충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일반 차량이 해당 공간을 장시간 점유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인구 기준은 ‘모든 지역에 동일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상적 목표를 실현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효율성, 민간 유도, 지속가능성이라는 핵심 요소를 놓치게 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차량 수 기준 배분의 실효성과 그 이면의 딜레마
차량 수 기준은 수요 기반 예산 배분이라는 점에서 정책의 ‘성과 중심주의’에 부합한다.
충전소가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설치 후 이용률이 높고, 예산 대비 효율이 높은 결과가 도출된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제주도는 전기차 10만 대 시대를 대비해, 차량 수 기준 예산을 통해 전국 평균보다 3배 이상의 충전소 밀집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세종시, 성남시 등도 차량 수 기준에 따라 충전소가 밀집되어 있으며, 이 지역들은 일일 충전소 회전율이 25회를 넘는 등 명확한 정책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수도권 및 대도시 쏠림 현상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은 대부분 인프라가 이미 구축되어 있는 수도권, 대도시, 고소득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만 예산이 집중될 경우, 지방의 전기차 보급 격차는 더욱 심화되며, 결국 전기차 자체가 수도권 중심 ‘부유층 교통수단’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발생할 수 있다.
2) 정책 선순환 효과 미흡
예산이 차량이 많은 곳에만 투입되면, 전기차가 없는 지역은 충전소가 없고, 충전소가 없으니 전기차도 구매하지 않게 되는 ‘수요-공급 미스매치’가 고착화된다. 이는 정책 선순환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3) 미래 수요 반영의 한계
차량 수는 현재 수치일 뿐, 미래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 일부 신도시(예: 고양 창릉, 남양주 왕숙)는 아직 입주 전이라 차량 등록은 거의 없지만, 향후 수십만 명의 유입과 함께 전기차 보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지역은 차량 수 기준만 적용하면 예산 배정이 거의 되지 않아, 충전 인프라 선제 구축이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차량 수 기준은 효율성은 확보할 수 있으나, 정책의 지역 균형성과 미래 대응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형평성과 효율성을 함께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
전기차 충전 인프라 예산 배분은 단순히 행정 통계 수치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국 어디에서나 전기차 이용이 가능하도록 지속가능한 충전 인프라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유연한 배분 체계가 필요하다.
▷ 복합 배분 모형 도입: 기본 + 가중치 방식
모든 지자체에 일정 비율의 ‘기본 예산’을 배분하고, 이후 차량 수, 미래 수요 예측, 설치 요청서 등 실질적 요소를 반영한 ‘가중치 예산’을 추가로 배분하는 2단계 혼합 모델이 적절하다.
예: 전체 예산 중 40%는 인구 기준, 60%는 차량 수 + 수요 예측 기반 배분.
▷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 구축
차량 수뿐 아니라 전기차 구매 예정자 수, 아파트 입주 예정 수, 교통량, 통근 패턴 등을 기반으로 예측하는 AI 수요 분석 시스템을 구축하면, 예산 배분의 객관성과 선제성 모두를 담보할 수 있다.
▷ 성과 기반 평가 연동
설치 후 일정 기간 동안 충전소 이용률, 유지관리 상태, 민원 발생률 등 운영 데이터를 기준으로 다음 해 예산 배분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지자체의 책임성과 효율성도 함께 강화할 수 있다.
▷ 민간 매칭 예산 유도
민간 사업자가 일정 비율(예: 30%)을 부담하고, 나머지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매칭 펀드 방식’을 도입하면, 정부 재정 부담은 줄이고, 민간 참여는 확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예산은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정책적 사고의 산물이어야 한다. 인구 기준과 차량 수 기준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책은 결국 효율성과 형평성 중 하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제는 데이터 기반, 예측 기반, 운영 성과 기반의 복합적 예산 배분 구조를 설계하여, 지속가능한 충전 인프라 생태계로 나아가는 구조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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