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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

전기차 충전, 강원도형 인프라 정책과 산지 지형이 만든 행정 과제

전기차 충전소 확대의 시대, 왜 강원도는 더 어렵고 중요할까?

전기차 충전소 확대는 더 이상 대도시만의 과제가 아니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전체 차량의 9% 이상이 전기차로 전환되었고,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5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충전 인프라 확충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지만, 모든 지역이 동일한 조건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강원도는 그 특수한 지리적·행정적 여건 때문에 전기차 충전소 확대에 있어 가장 복잡한 난제를 안고 있는 지역이다.

산간 지역의 전기차 충전소

강원도는 전국 광역지자체 중 면적이 가장 넓다. 전체 행정구역의 약 82%가 산지로 구성되어 있어, 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도로망 자체가 도시처럼 집약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 이처럼 도로 간 간격이 크고, 생활권 자체가 넓게 퍼져 있다 보니 전기차 이용자는 항상 방전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충전소 간의 간격이 멀수록 긴급 상황에서 대응하기 어려우며, 눈·비·한파 등 강원도 특유의 기후 조건은 전기차 배터리 효율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또한 강원도는 고속도로 중심의 차량 이동이 많고, 고랭지 농산물과 생수, 관광 물류 등 중소형 화물 운송 차량이 하루에도 수천 대 이상 오고 가는 물류 흐름의 핵심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 승용 전기차뿐 아니라 화물용, 렌터카, 상업용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충전소 정책은 대부분 승용차 중심이고, 화물 차량이 접근할 수 있는 충전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다.

행정적으로도 강원도는 단일 도청을 기준으로 18개 시·군청이 분산되어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재정 자립도가 낮고 전기차 전담 인력도 없다. 춘천, 원주, 강릉 같은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군 단위 시·군은 충전소 설치에 필요한 기술적 이해도와 실행력이 매우 낮다. 실제로 2024년 강원도 자치단체 중 8개 군청이 전기차 관련 업무를 ‘차량관리팀’ 또는 ‘시설관리과’에서 겸직 형태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형, 기후, 경제, 행정 인프라 모든 측면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는 강원도에서의 전기차 충전소 정책은 단순한 기술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실제 국가 균형발전과 환경정책의 일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된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 현황과 강원도 지역별 불균형 실태

강원도의 전기차 충전소 설치는 외형적으로 보면 빠른 성장을 이뤘다. 2022년까지만 해도 도 전체에 약 2,300기의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2025년 1분기 기준으로는 총 6,400기 이상으로 세 배 가까이 확대되었다. 전기차 등록 대수 또한 4만 대를 넘어섰으며, 이는 전국 평균 수준에 근접한 수치다. 하지만 겉보기 수치와 달리 강원도 내 지역별 편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우선 춘천, 원주, 강릉 등 대도시는 전기차 보급률과 충전소 밀도 모두 전국 상위권이다. 춘천시는 약 1,350기, 원주시는 약 1,210기, 강릉시는 약 980기의 충전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들 지역은 대형 마트, 공동주택, 공공기관 중심의 도심형 충전소 배치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선, 평창, 인제, 양양, 화천, 철원 등 농촌·산간 중심의 군 단위 지역은 여전히 충전 인프라 사각지대에 가까운 상태다.

예를 들어 인제군은 총 전기차 등록 대수 약 900대에 대해 충전소 수는 62기뿐이며, 대부분은 공공기관 주차장에 위치한 완속 충전기다. 양양군의 경우 780대의 전기차가 등록되어 있음에도 충전소는 57기뿐이고, 그중 급속충전기는 단 4기에 불과하다. 이 같은 수치는 단지 수량 부족을 넘어 생활권 기반의 충전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문제는 ‘지정은 되어 있으나 실사용이 불가능한 충전소’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강원도 산간 지역은 겨울철 평균기온이 낮고 강설량이 많기 때문에, 야외 노출형 충전기의 경우 겨울철 고장률이 평균보다 3배 이상 높다. 또한 도로 결빙, 통신 불량, 전력 공급 지연 등의 이유로 고장 발생 시 수리가 1주일 이상 지연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게다가 농가나 단독주택이 많은 강원도에서 가정용 충전기 설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공동주택 중심의 서울·경기 모델과는 달리, 강원도 주민 대다수는 야외 주차장이나 산비탈, 농로 옆에 주차해야 하며, 전기 배선 자체도 충전기 설치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강원도는 설치 방식, 위치 선정, 유지보수 방식 모두에서 새로운 기준과 전략이 필요하다.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가로막는 행정력과 예산의 구조적 문제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은 단순히 예산을 투입해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특히 강원도처럼 행정 자원이 부족하고, 지역별로 여건이 천차만별인 곳에서는 전담 인력 확보, 조례 정비, 민간사업자 협력, 주민 설득, 유지관리 계약 등 복합 행정역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원도 행정 구조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내 18개 시·군 중 절반 이상은 전기차 충전소 설치 업무를 전문 부서가 아닌 시설관리팀, 환경팀, 차량관리팀이 겸직 형태로 처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충전 인프라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충전소 설치와 운영이 갖는 법적 책임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행정 혼선과 정책 실패를 반복하는 구조를 낳고 있다.

예산 문제도 심각하다. 강원도는 국비·도비·시군비 매칭 사업이 기본 구조인데, 군 단위 자치단체는 20%의 군비 매칭조차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무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강원도 내 충전소 설치 대상지 중 도비와 국비는 확보되었지만 군비 확보 실패로 인해 취소된 건수가 46건에 달했다.

또한 민간 충전사업자는 도심 수익이 나지 않는 외곽지역 설치를 기피한다. 충전 요금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데다, 유지비와 인건비를 감안하면 2년 내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공에서 설치한 충전소 중 상당수는 민간 위탁 운영이 아닌 지자체 직접 관리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인력과 예산 부족 문제와 맞물려 장기 방치된 충전소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처럼 강원도의 전기차 충전소 설치는 ‘설치할 땅이 없어서가 아니라’, 설치할 수 있는 행정 역량과 지속 가능한 예산 구조가 없어서 추진이 지체되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충전소 강원도형 지속 가능 전략 제안

강원도에서의 전기차 충전소 정책은 더 이상 전국 공통 모델을 따르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강원도만의 지리적 특수성과 행정 현실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 전략이 필요하며, 다음과 같은 현실 기반 전략이 절실하다.

1) 모바일 충전 차량 도입

지속 가능한 외곽 대응 전략으로 이동형 충전 차량을 도입해야 한다. 정선·평창·화천 등 충전기 설치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지역에서는 ‘예약 기반’으로 충전차량이 방문하여 완속 또는 반 급속 충전을 제공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일본 군마현, 캐나다 BC주 등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이다.

2) 이동형 완속 충전기 지원 확대

강원도 내 단독주택, 비정형 주차 공간이 많은 곳에서는 차량과 함께 이동 가능한 휴대형 충전기(이동식 AC 충전기)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 사용자가 직접 표준 콘센트에 연결해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은 설치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에 가장 적합하다.

3) 마을 회관 공동 충전소 모델 구축

주민 다수가 집 앞에서 충전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마을 회관’, ‘농협 창고’, ‘리사무소’ 등 마을 핵심 공간에 공동 충전기를 설치하고 주민들이 순번제 또는 예약제로 공동 이용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4) 충전소 통합관리센터 설립

강원도청 또는 강원 특별자치도 출범에 맞춰 전기차 충전소 통합관리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이 센터는 고장 접수, 수리, 데이터 분석, 민원 처리를 일원화하여 지금처럼 분산 대응으로 인한 행정비용 낭비와 책임 불분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5) 태양광·ESS 연계형 자립형 충전소 실증 확대

전력망 증설이 어려운 산간 지역은 태양광 패널 + 에너지 저장장치(ESS)를 연계한 자가발전형 충전소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는 외부 전력망 부담 없이도 독립 운영이 가능하며, 환경 친화적이고 유지비가 낮다.

 

 

결론 요약

전기차 충전소 정책은 단순한 기기 보급을 넘어 지역 맞춤형 설계, 주민 수용성 확보, 장기적 운영 모델을 포괄하는 정책이다. 강원도는 그 지형적 특수성과 행정 한계 때문에 대한민국 충전소 정책의 가장 복잡한 시험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강원도가 이 문제를 풀어낸다면 그 자체로 전국 지자체가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전국 단위 ‘지속가능 충전소 모델’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표준 정책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형 해법을 새롭게 설계할 시간이다.